사랑의 단상 : Montage of Love


유랑하는 사랑을 붙잡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2024. 11. 08. - 2025. 06. 08.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서문 中



사랑이라는 피상적인 그 어떤 것은 오랫동안 수많은 매체와 이야기를 거쳐, 닳고 닳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형체와 특성이 뚜렷이 명명되지 않아 사람들은 그 갈증의 해소를 위해 심장의 형상을 붙이거나, 여러 언어로 그려내며 실존적 불안을 달래곤 했다. 이 담론은 이렇듯 수많은 주체들에 의해 말해져 왔으나,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이제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낡고 식상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본 전시는 사랑이 타자에 의해 발현되는 도구로서가 아닌, 표류하는 사랑에 주체성을 쥐여주고 그 근원적 맥락을 탐구해보려는 의지로부터 시작한다.


필자는 전시의 서문을 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사랑이 주는 막연한 환상을 예찬하기엔 그 존재의 깊이가 절하되는 것 같았으며,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를 형상화한 문헌적 기록을 나열하기엔 고루해 보였기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맛볼 수도 없는 사랑을 물리적으로 먼저 접근해 보았다. 정신분석학 중 관계 대상 이론*을 기준으로, 인간이 유아기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맞이하는 사랑의 대상들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연인(Lover)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 가족과 같이 나의 선택 의지 없이 발현된 관계 대상에 따른 사랑. 인간, 비인간을 넘어선 존재에 대한 애정과 비물질적 소통을 나누는 마니아적 사랑. 자기 이상형을 직접 조각한 어긋난 타자적 사랑인 피그말리온.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상화하여 주체성을 형상화한 나르시시즘적 사랑까지. 보편적으로 알려진 이러한 사랑의 모습들을 뒤틀어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본 전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다층적인 이야기를 하는 5인의 작가를 소개한다. 여기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가 아닌, 무엇을 애정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대상화하고 주체화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은 전시의 흐름 속에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찾아가게 된다.

 

아울러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을 형성하는 맥락적 장치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이 차용되어 이는 전시의 제목과, 의도를 관통하는 기능을 한다. 영원히 정리되지 못할 사랑에 대한 단편적인 심상들을 여러 미학자와 철학자들의 입을 빌어 묘사한 책이다. 사랑은 본체가 없는 영혼과 같아서 본래 물리적 모습이 존재하지 않은 채, 화자(話者)에게서 타자(他者)로 전달되는 비물질의 특성과 닮아 있을지 모른다.

 

아득히 막연한 그 존재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다섯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잠시 그 실체를 입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두서없이 돌진해 왔던 사랑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본질이 주는 가치와 온도에 다시 한번 재고해 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사랑에 대한 해석 방식의 가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저마다의 온도 차이를 존중하며 안온한 사랑에 이르는 법을 스스로 깨닫길 기대한다.



*정신분석 학파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개인의 정서적 발달과 대상(다른 사람)에 대한 내적 표상이 정신적인 건강과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중점을 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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